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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바라보는 세상

누구와 전투를 ....????

예상대로 노동자와 농민들은 전투경찰의 적이었다. 사다리를 넘는 사람들을 보며 '대조영'을 생각했다. 추운 겨울 물대포를 맞으며 성벽을 오르는 저 힘없는 병사들은 고구려 사람인가 당나라 사람인가?

학교 다닐 때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교원 임용고시를 반대하는 국립사범대 학생들의 집회였다. 춘천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길을 막혔다. 남춘천 역엔 경찰들이 깔려있었다.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표를 사지도 못하게 했다. 우리는 강촌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강촌역에 다다를 무렵 기차도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버스 운전사님께 부탁해서 철길에 내린 우리는 막 떠나려는 기차에 올랐다. 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어린 마음에 재미있다는 생각도 했다.

서울에 어렵게 도착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전투경찰이었다. 집회가 열리기로 한 곳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정류장에 내리는 순간 고함 소리와 함께 같이간 후배가 끌려갔다. 당황한 우리는 내리지 못하고 몇 정거장을 지나간 후에야 내렸다. 길도 잘 모르는 우리는 이리 저리 해매다 집회에 가보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했다. 붙들려간 후배는 닭장차라고 부르던 전투경잘의 버스에 실려 김포공항에 부려졌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길도 모르는 서울의 골목을 헤매며 경찰만 보면 도망치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했다. 무슨 거창한 목적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밥그릇 챙기기였다. 그런 우리들이 전투의 대상이 되다니. 누구나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다는 민주공화국에서 아무나 집회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서울은 아무나에게 열린 곳은 아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성조기를 들고 기도회를 열어 대통령을 욕할 수는 있게 되었다. 노동자와 농민은 모든 경찰의 적이 되어 붙들려 가야만 한다. 이번 일은 백성들의 당연한 모임을 허락하지 않은 대통령이나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들이 백성들의 뜻을 업신여기고  전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전투경찰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투경찰을 없애야 한다. 한 번도 전투경찰이 있어야 했던 적은 없다. 도대체 누구와 전투를 벌이려고 만든 것이란 말인가? 폭력시위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준비된 폭력시위란다. 며칠 전 부터 협박을 하며 폭력시위를 준비하게 한 것은 바로 경찰이다.

이번 대회를 허가하고 질서를 지켜주었다면 아마도 성조기를 흔들어 대던 집회보다 더 평화로운 집회가 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많은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비정규직 보호법이나 자유무역협정에서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면 이런 집회가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