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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바라보는 세상

남대문 폐허를 곡함 - 고은 -

 



머리 풀고 울어에야 하리

옷 찢어 던지며 분해야 하리

오호 통재

이 하루아침 남대문 폐허를

어찌 내 몸서리쳐 울부짖지 않으랴

돌아보라

6백년 연월 내내 한결이었다

이 도성 남녀노소들 우마들

이 나라

이 겨레붙이 모진 삶과 함께였다

혹은 청운의 꿈 안고 설레어 여기 이르면

어서 오게 어서 오시게

두 팔 벌려 맞이해 온 가슴인

나의 남대문이었다

혹은 산전수전의 나날 떠돌이 하다

여기 이르면

어디 갔다 이제 오느뇨

활짝 연 가슴 밑창으로 안아줄

너의 남대문이었다

단 하루도 마다하지 않고

단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지켜서서

숙연히

감연히

의연히

나라의 기품이던

저 조선 5백년

저 한민족 1백년의 얼굴이었다

온 세계 누구라도 다 오는 문 없는 문

온 세계 그 누구라도 다 아는

만방 개항의 문

정녕 코리아나의 숨결

서울 사람의 눈빛 아니었던가

이 무슨 청천벽력의 재앙이냐

이 무슨 역적의 악행이냐

왜란에도 호란에도

어제런듯 그 동란에도

끄떡없다가

이 무슨 허망의 잿더미냐

여기 폐허 땅바닥에 엎드려 곡하노니


여기서 주저앉지 말고 멈추지 말고

떨쳐 일어나

다시 바람 찬 천년의 남대문 일으켜낼지어다

여봐란듯이

저봐란듯이

만년의 내일 내 조국의 긍지 우뚝 세워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