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아침 ....
휴일만 되면 희한하게 일찍 일어나는 아들녀석이 책보고 있는걸 보고,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베란다 창문을 열어 신선한 바람을 맞이하기 위해
열다보니 창문쪽에 있는 아들녀석이 키우는 풍이(장수풍뎅이)가 움직임이 없다.
"아들 풍이 안움직인다."
부리나케 달려오는 아들 굳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풍이집을 살펴보더니
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집어 올려 놓는다.
눈물이 또르르 볼을 타고 내리더니
휑하니 뒤돌아 가버려서 어디가나 했더니
식탁에 가서 엎드러 운다. 헐~~
와이프가 '아들 왜 울어?' 뇌관이 터지듯....
엉엉 소리내서 울어버린다.
" 엄마 때문에 풍이가 죽었잖아~~~ ㅠㅠ "
' 엄마가 왜?'
"엄마가 풍이가 밤에 날아 다녀 시끄럽다고 ㅠㅠ..... 베란다에 내놔서 얼어 죽은거란 말야~ ㅠㅠ "
연신 눈물을 훔치며 서럽게 우는 아들녀석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다.^^;;;
이제는 통곡에 가깝게 울기 시작한다.
바라보고만 있는 나를 보더니
진짜야? 하는 눈짓을 보낸다.
턱으로 베란다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입술로만 어떡해? ......나도 입술로만 몰라~~!
울고있는 녀석을 보니
어떻게 수습은 해야되겠고 해서
얼마전에 학교에서 받아온 사슴벌레 한쌍을 합방시켜주자고 한다.
그러자 훌쩍거리면서 반응을 보인다.
' 가서 한번 보자'
밍기적 거리면서 일어나 베란다로 같이 나간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지난 밤에 죽은것인지 꿈쩍 안하고 있다.
아들 녀석은 눈물을 훔치면서도
살아있는거 같다면서 살살 여기저기 풍이를 만져본다.
아무리해도 반응이 없자 다시 눈물이 글썽이고 또르르 뺨을 타고 내린다.
" 얀마~ 니가 키우는거 니가 관리해야지 엄마 탓하면되냐~"
' 엄마가 시끄럽다고 내놨단 말야~'
" .............."
' 난 추우니까 내 놓지말자고 했는데 시끄럽다고 해서.... ㅠㅠ '
...........
'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ㅠㅠ '
...........
"얼만큼 자라야 하는데?"
'윗 뿔이 아랫뿔 처럼 ㅠㅠ 자라야 다 큰거란 말야 ㅠㅠ..'
............
"알았다. 풍뎅이는 기온이 차가우면 죽어.....!
사슴벌레 오후에 합방 시켜줄테니까 준비나 하자~!"
.................
' 이 풍이는 어떡해?"
하마터면 그냥 쓰레기통에 버려라는 말이 텨나올뻔 했다. 휴~~~~
" 화분에 묻어 줘라...!"
.............
풍이는 아들이 학교 방과후학습 생명과학 선생님께 받아와서
애지중지 밥 줘가면서 기르던 녀석이었다.
찰흙으로 만드는것도 최근엔 거의 장수풍뎅이...사슴벌레...그런거다.
슬픈 맘이야 이해가 가는데 서럽게 울 필요까지야~~ 헐~~!
그래도 풍이 모습을 보고있자니 눈물이 또 볼을 타고 내린다.
애정을 많이 쏟은 모양이다.^^ 애고고..... 으짜쓰까~~~ ^^;;;
달래고 위로해줘도 한동안 또 서럽게 운다.
'아들이 잘 기르고 있었는데 엄마가 소홀히 해서 미안해~!'
훌쩍거리면서도 안아주는 지 엄마에게 안긴다.
'저거 처리하고 저 집을 깨끗하게 씻어서 사슴벌레 집으로 만들자'면서
들고나오고 둘이 화장실에서 요란하게 씻고 있다.
참나무 토막을 물에 적당하게 불려놓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오후에 사슴벌레 한쌍을 합방 시키기 위해서다.
거실에서 내 장난감(낚시도구)을 만지면서 쉬고 있는데
와이프가 얼른 나를 톡 건드려 손짓을 한다.
베란다에 놓인 좀 큰 화분 한쪽을 일회용 숟가락으로 파고있다.
아마도 풍이를 매장할 모양이다.
하는 모습이 하두 진지해서 조용히 지켜보기로 한다.
풍이가 들어갈 만큼 흙을 파내더니
그속에 조심스럽게 풍이 놓고는 흙을 덮는다.
그러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무릅을 꿇고 성호를 긋는다. @_@;;;;
둘이서 마주보고 어리둥절 놀라고만 있다.
잠시후 다시 성호를 긋고 일어나더니
절을 두번이나 한다. 헉 @_@;;;;
'아들 뭐라고 기도했니?'
"죽게해서 미안해, 다음에 태어나면 숲속에서 살으라고 했어~!"
........................
"그래 잘했어~! 풍이도 좋아 할것야 그치?"
웃지는 않지만 한결 편안해진 표정이다.
어린애 같기도 하고 훌쩍 자란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긴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설날이나 제삿날 전까지 절 연습을 시키곤 했는데...
성당에 가서도 면번씩 성호 긋는 연습을 시켰었는데.....
이제는 저 혼자서도 기도도 하고
절도 의젓하게 하는 모습에
맘이 싸아하게 바람이 지나간다!
순수한 마음에 나온 행동이 형식에 얽메이는것 같기도하고
사회규범을 익혀나가는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훌쩍 커버린 녀석이 다시 보인다.
기분이 묘~~~하다. -_-
..................
저녁에 되어 물불린 참나무토막을
톱밥속에 넣고 사슴벌레 한쌍을 합방시키고
비교적 따뜻한곳으로 이동시키는데
'오늘 밤에 풍이 귀신이 집안을 돌아다니겠구만...아 무서~'하며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걸 보자
포복졸도 하는줄 알았다.
아무리 작은 벌레일지라도
자연에서 귀한 생명이다.
하느님께 받은 제 역활을 충실히 해내면서
순응하면 살고 있는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 아니다.
그냥 어느정도 자연을 빌려 쓰고 가는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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