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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들어봤던 음악

가난한 사랑 노래

가난한 사랑 노래
-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가난해야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얼마나 부유해야 부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려서는 가난한 줄 몰랐다.
매일 세 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내 한참 후배의 야그는 달랐다.
비록 소풍 갈 때 김밥 대신에 4천원만 내어 주시면 안 되겠느냔 말에
삼촌에게 싸대기를 얻어맞은 적은 있지만 그래도 가난한 줄 몰랐다.
가끔 숙부가 일이 잘 되었다고 돼지고기 몇 근 끊어 오면 상추를 씻어 쌈을 싸먹기도 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교복 자율화가 되고,
겨울 오바로 누비솜 잠바 대신 다들 오리털 잠바란 것을 입고 다닐 때 공장 잠바를 입고,
학교 갈 때도 가난한 줄 몰랐다.
춥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진정 가난이란 것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첫 해,
첫 학기, 첫 주 수업이 진행되던 한 가운데 교실 문을 드르륵 열고
나를 찾던 학생부 주임 선생의 호출이 없었다면...
수업 중 복도로 끌려 나가 운동장을 향한 창을 바라보며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친절하게 말했다.
“네가 결손가정 출신이란 거 잘 안다. 조용히 학교생활 잘 하자.”
그 한 마디로 나는 가진 것을 모두 잃었다.
자신감, 자존심, 의욕 같은, 모든 것을 잃고 나자 문득 가난해진 나만 남았다.
이런 야그를 하며 털어넣는 소주 한잔의 후배였다.
저 시에 대해서는 이런 풍문이 있다.
노동운동을 하다 쫓기는 신세가 된 한 젊은이가 앳된 신부를 만나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시인은 청년에게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저 시를 써주었다고 한다.
시인은 이후 그 젊은이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는 본래 “탱크 바퀴 굴러가는 소리”였는데,
검열을 두려워한 출판사에서 바꿨다고도 한다.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사랑이 없어서 우리가 가난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 사랑을 가르쳐 준, 가르쳐 줄 이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기에 나는 방황했다.
인간은 살아가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다.
사랑 때문에, 사랑을 찾아서, 사랑하기 위해서.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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