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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소망하는 세상

신발년이라고?

무거운 물건을 시켰다는 이유로 “씨발년’이란 소릴 듣는다면

아침에 ‘까대기’라 부르는 분류작업을 하다보면 이곳저곳에서 “씨발년”, “썅년”, “미친년”, 이렇게 욕을 하는 기사들을 볼 수 있다. 주로 엘베 없는 5층이나 6층에 사는 고객이 시킨 무거운 물건을 보고 하는 소리다. 이렇게 욕하는 기사들도 자신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배려해주는 고객들에게는 감사할 줄 알며 무거운 물건이라 하더라도 당일 배송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욕하면서도 박스가 깨져 있으면 열심히 다시 포장하는 기사도 있고 박스의 먼지까지 닦는 기사도 있다. 욕하는 이유도 단순하진 않다. 무거운 물건을 시켜서만이 아니라 트러블이 있었던 고객에게도 욕을 한다. 주소를 잘못 써 놓고도 다짜고짜 욕부터 했던 고객, 오배송 한 번 했다고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던 고객이 시킨 물건이 오면 욕을 하기도 한다. 

아무튼 심하게 욕을 하는 기사들에게 여러 가지 말을 하곤 한다. 남자가 시켰는지, 여자가 시켰는지 알지도 모르면서 ‘씨발년’이 뭐냐고도 하고, 무거운 물건 시킬 수도 있지, 네 와이프가 무거운 물건 시켰다고 쌍년이란 소릴 들으면 좋겠냐고도 하고. 그러면 반응이 제 각각이다. 그럼 ‘씨발놈’이라고 해야 하나, 그건 어감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고객 앞에 가서 욕을 어떻게 합니까? 그냥 우리끼리 스트레스 푸는 거지. 여성 고객이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냐, 욕하지 말아, 네가 여성 혐오를 만들고 있는 거야. 우리 노동이 진짜 힘든 이유를 찾아야지, 진짜 힘든 이유가 고객이 아니잖아. 

이런 저런 대화는 길게 이어질 수가 없다. 레일 위로 쏟아지는 물건을 잡아야 하고 분류해야 하고 차에 실어야 하고 배송을 나가야 한다. 도덕적 훈계를 길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지만 얘기 나눌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게 아쉽다.   

독일에서 공부하다 잠시 한국에 들어와 분류 알바를 하러 온 학생이 있었다. 독일의 택배는 주로 우체국에 맡겨 찾아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엘베 없는 5층, 6층은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그런 게 없는데... 엘베가 있든 없든 1층이든 5층이든 물건이 크든 작든 우리에게 떨어지는 건 똑같이 건당 900원(여기서 수수료 10%, 부가세 10% 등을 제외해야)인데 독일 방식을 적용하면 저런 욕설이 줄어들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물론 여기도 급지 수수료의 차이는 있다. 우리 영업소 구역이 배송 난이도가 높은 소위 C급지여서 건당 900원이고 다른 곳은 그보다 낮다) 

아무튼 수수료가 낮기에 기사들은 더 많이 배송해야 하고 더 많이 집하해야 하고 더 오랜 시간 일해야 한다. 오늘 단톡방에 동료 기사가 제발 ‘똥짐’의 개수와 부피를 줄여달라고 했는데 특히나 규격외 승인 제품이라 부르는 정말 감당하기 힘든 ‘똥짐’들이 있다. 30KG 이상 나가는 물건을 "혼자" 엘베 없는 5층까지 옮기다 보면 곡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착취 받고 차별 받는 사람들이 그 착취와 차별의 구조를 탓하기보다는 스스로를 탓하거나 자신보다 더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탓하는 경우를 수없이 볼 수 있다. 또는 구조를 탓해야 하는 것도 알지만 당장에 해결 방법은 안 보이니 손쉽게 ‘희생양’을 찾는다. 그 ‘희생양’이 여성이다. 

택배 현장에서 여성 혐오가 작동하는 방식을 쓰려고 했는데 무슨 얘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꿔야 한다. 정확히 말해 바꾸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걸 바꾼다고 해도 여성혐오와 여성차별이 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더군다나 현장 바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혐오와 차별을 해결하려면 자본주의를 변혁하는 정치적 대안과 실천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노동 현장의 문제를 외면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 별 말도 못하고 있지만 오늘도 이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와 활동가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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