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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소망하는 세상

김남주 시인의 시집을 읽고 밤새울다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뭇 사내의 눈에 흐르는 눈물처럼 소리도 없이 내렸다.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는 이따금 들려왔다. 그것도 신경써서 듣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무심한 소리였다. 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았다. 안개가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시간, 세상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떨리는 아픔으로 시인의 마음을 건네다

▲ 고 김남주 시인
ⓒ 김남주해남기념사업회
어둠은 안개를 삼켰고 어둠 속의 안개는 별빛을 삼켰다. 적막한 산촌의 밤은 그래서 더 없이 칠흑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시집을 펼쳐 들었다. 언젠가 헌책방에서 산 김남주 시인의 시집 <사상의 거처>이다.

시집이 없어 산 것은 아니었다. 김남주 시인의 시집이 헌책방에서 먼지를 덮어 쓰고 있는 게 안타까워 집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그 일로 인해 똑같은 시집 두 권이 책장에 나란히 꽂혔다. 책장에 꽂고 나니 김남주 시인이 외롭지 않아 보여 좋았다.

"손 떨리는 아픔으로 그대에게 김남주 시인의 마음을 전합니다. 더욱 더 건실한 여성으로 자라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동기로 남았으면 합니다."

시집의 표지를 열자 책 선물을 한 이의 말이 볼펜 글씨로 쓰여져 있었다. 김남주 시인이 세상을 뜬 지 1년 후에 있었던 일이다. 그들이 주고 받으려던 것은 단순히 김남주 시인의 시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해방전사가 되길 주저 하지 않았던 김남주 시인이 남기고 간 올 곧은 시대정신을 주고 받으려 했을 것이다.

김남주 시인을 떠나 보낸 지 13년이 되었다. 2월 13일이 바로 그의 기일이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은 강산이 서너번은 바뀌었을 정도로 많이 변했다. 그렇게 변한 세상을 두고 어떤 이는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라는 노래를 술만 취하면 했다. 또 어떤 이는 바뀐 세상에 걸맞는 담론을 생산하자고 주장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요즘 상황을 두고 김남주 시인은 특유의 음성으로 '세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변한 건 너희들의 기름진 얼굴과 두툼해진 뱃살뿐'이라고 일침을 가할지도 모르겠다.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바뀐 세상을 따라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 김남주 시인 10주기 추모제 모습.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셋이라면 더욱 좋고 둘이라도 함께 가자
앞서가며 나중에 오란 말일랑 하지 말자
뒤에 남아 먼저 가란 말일랑 하지 말자
둘이면 둘 셋이면 셋 어깨동무하고 가자
투쟁 속에 동지 모아 손을 맞잡고 가자
열이면 열 천이면 천 생사를 같이하자
둘이라도 떨어져서 가지 말자

가로질러 들판 산이라면 어기여차 넘어 주고,
사나운 파도 바다라면 어기여차 건너 주자
고개 너머 마을에서 목마르면 쉬었다 가자
서산 낙일 해 떨어진다 어서 가자 이 길을
해 떨어져 어두운 길

네가 넘어지면 내가 가서 일으켜 주고,
내가 넘어지면 네가 와서 일으켜 주고,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할 길 시련의 길 하얀 길
가로질러 들판 누군가는 이르러야 할 길
해방의 길 통일의 길 가시밭길 하얀 길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 김남주 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전문


김남주 시인은 혼자 사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가는 길에 김남주 시인이 앞장 섰을 뿐이다. 죽음의 공포를 수시로 넘기면서도 함께 가는 길을 택했다. 결코 한순간이라도 홀로 살고자 비굴하지 않았다.

박정희 독재 정권이 그를 전사로 만들었지만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해풍이 불어주는 해남의 고향집에 머물렀고, 그 스스로 보리피리 부는 소년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몇 해 전 시인 소설가들과 함께 김남주 시인의 추모 10주기 행사가 열리는 해남엘 갔었다. 그날도 올해와 같이 입춘이 지났건만 무척 추운 날이었다. 옷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차갑다 못해 매섭기까지 한 날이었다. 그를 추모하는 공연이 있었고, 그와의 인연을 반추하며 밤새 술을 마셨다.

그를 잊고 있는 세상이 두렵다

▲ 김남주 시인이 생전에 읽던 책들.
다음 날엔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했다.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 있는 생가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그의 동생인 김덕종이 생가를 관리하고 있었다. 생가엔 김남주 시인이 사용하던 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가 읽던 책과 손때 묻은 육필 도구들이 시인의 삶을 짐작케 했다.

생가 앞에는 발목을 덮고도 남을 정도로 웃자란 보리밭이 푸르게 펼쳐져 있었다. 김남주 시인의 땀이 배어있는 보리밭은 그가 떠났어도, 세상은 변했다지만 그가 살아생전 그랬듯 푸르기만 했다.

그가 남긴 것은 시 뿐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야 하는 최소한의 양심을 남겼다. 비굴하여 편케 사느니 고통스럽더라도 양심을 지키며 살기를 원했다. 그 양심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전사로 태어나게했다.

그를 추억하는 많은 이들이 바뀐 세상 안에서 각자의 추억만 꺼낸다. '그땐 그랬지'로 시작되는 후일담은 김남주 시인의 전사적인 양심을 오래 전의 일인양 추억 속에 머물게 한다.

시집 <사상의 거처>를 접고 시집 <진혼가>를 펼친다. 그의 시집을 펼치면 늘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있다. 아니다. 시가 아니라 그가 살아있다고 말해야 옳다.

시집을 펼치면 김남주 시인이 살아서 뚜벅뚜벅 걸어온다. 때로는 웃음띤 얼굴로, 때로는 화난 표정으로 우리 곁으로 온다. 하여 바뀐 세상을 탓하며 기름진 얼굴을 한 이는 그의 시집을 섣불리 펼칠 수 없다.

▲ 김남주 시인 생가 앞에 있는 보리밭.
지난해 가을 제주에서 김남주 시인의 동생인 김덕종을 만났다. 그는 전농 광주전남 의장 자격으로 한미FTA협상 저지를 위한 원정 투쟁단을 이끌고 왔다고 했다. 해남농민회를 만든 것이 김남주 시인이라 그 감회가 크다.

담배를 나눠 피며 요즘도 김남주 시인의 생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냐고 물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갑자기 그를 잊고 있는 세상이 두려워졌으며, 뱃살 넉넉해진 이들과 기름진 얼굴들을 한 이들이 무서워졌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 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양키 점령군의 탱크 앞에서
자본과 권력의 총구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제 나는 쓰리라
사람들이 주고 받는 모든 언어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탄생의 말 응아응아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말 아이고아이고에 이르기까지
조국은 하나다 라고
갓난아기가 엄마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말
엄마 엄마 위에도 쓰고
어린아이가 어른들로부터 배우는
최초의 행동
아장아장 걸음마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나는 또한 쓰리라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만나고
기쁨과 슬픔을 나눠 가지는 인간의 길
오르막길 위에도 쓰고
내리막길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위로 험한 산길 위에도 쓰고
파도로 사나운 뱃길 위에도 쓰고
끊어진 남과 북의 철길 위에도 쓰리라

오 조국이여
세상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꽃이여 이름이여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의 눈길이 닿는 모든 사물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눈을 뜨면
아침에 당신이 맨 먼저 보게 되는
천정 위에도 쓰고
눈을 감으면
한밤에 맨 나중까지 떠 있는
샛별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축복처럼
만인의 배에서 차오르는 겨레의 양식이여

나는 쓰리라
쌀밥 위에도 쓰고 보리밥 위에도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바다에 가서 쓰리라 모래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파도가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산에 가서 쓰리라 바위 위에
조국은 하나다 라고
세월이 와서 지워버리면 그 이름
가슴에 내 가슴에 수 놓으리라
아무리 사나운 자연의 폭력도
아무리 사나운 인간의 폭력도
감히 어쩌지 못하도록
누이의 붉은 마음의 실로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외치리라
인간이 세워놓은 모든 벽에 대고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아메리카 카우보이와 자본가의 국경
삼팔선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식민지의 낮과 밤이 쌓아올린
분단의 벽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압제와 착취가 날조해낸 허위의 벽
반공이데올로기에 대고 나는 외치리라
조국은 하나다 라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내걸리라
지상에 깃대를 세워 하늘 높이에
나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키가 장대 같다는 양키의 손가락 끝도
가난의 등에 주춧돌을 올려 놓고 그 위에
거재를 쌓아올린 부자들의 빌딩도
언제고 끝내는
가진자들의 형제였던 교회의 첨탑도
감히 범접을 못하도록
최후의 깃발처럼 내걸리라

자유를 사랑하고 민족의 해방을 꿈꾸는
식민지 모든 인민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슬로건 조국은 하나다를!

- 김남주 시 '조국은 하나다' 전문


이제 세상은 그를 잊는 것인가. 그를 잊어도 될 만큼 그가 원하고 바라던 세상이 온 것인가. 살아있는 자 중에서 이 물음에 답할 자 있기나 한가. 있다면 대답해 보라.

▲ 광주 망월동에 있는 김남주 시인 묘소. 묘비엔 '온 몸을 불 태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시인의 영혼, 여기에 잠들다'라고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