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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소망하는 세상

시간의 회화

 

 

이름이 새겨진 문 안으로
현재를 부정하는  거울 하나가 깨어진다.

오래된 테이블 위에
촛불은 커피 증기에 굴곡되어 흐르고
가슴의 물기가
미망(未忘)의 눈으로  선택을 갈망하는 밤
이곳에 기억 하나
남길 수 없던가.

애증의 탄식은
비를 싣고
전기줄을 타고
담장 너머로 날아갔다.
그녀의
겨울 오후는 굳게 닫혀 있었다.
공책에 여름이라고 쓰자...
바람이 불어
팔랑팔랑 넘어간다.

접혀진 책갈피는 잊혀지고
푸른 창가 빈 침대에서
잉크에 가득 찬 햇살과 함께
단 한 번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야 말았다.

양쪽 창으로 쏟아지는 황혼
선홍빛으로 떨리는 하늘
사선으로 길게 늘어선 그림자
레드 오렌지
다크 스트로베리
딥 에보니
색깔이 지워진 바다에
빈 자리는 더욱 커지고
젊은 날이 이미 지나고 있음을
못내 애달퍼 한다.

흔적을 오래 안고 살아야 하는 나는
여운에 길들이며 살아야 하는 나는
무한한 인내심으로
날 위해 만들어질 사랑을 기다리며
또각또각 걸어가는
시간의 말굽소리를 들으며
비를 기다리는 선인장처럼
나날이 나날이
여위어 간다.

 

 

   - 燦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