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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소망하는 세상

개 목걸이? No! 인식표의 의미...

개 목걸이? No! 인식표의 의미.

 


어렸을 때는 그렇게 느낀 적이 별로 없었는데, 결혼하고 나서 종종 마눌님 으로부터 보수적이라고 타박을 당합니다. 몇일 전 저녁을 맛있게 먹고 마눌님과 산책을 나갔다가 발랄한 20대 초반 여성의 옷차림에 눈길이 꽂친 곰PD, 청자켓에 달랑거리는 것이 제법 큰 목걸이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인식표’였지 뭡니까. 그냥 아무 말도 말걸, 혼자말로 “무슨 군번줄을 다 걸고 다니냐” 뭐 이렇게 중얼거렸나 봅니다. 힐끔 쏘아보는 마눌님의 눈길을 느끼고는 '그냥 잠자코 있을 걸'하고 후회를 했지만, 또 마눌님의 잔소리는 시작됩니다. ‘밀리터리 룩도 모르느냐, 군번줄이든 뭐든 개성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악세사리다, 꽉 막힌 곰 같으니...’ 졸지에 패션도 모르는 보수주의자가 된 곰PD, 웬지 억울했지만 참을 인(忍)자를 가슴에 새기며 꾹 참았습니다. 뭐, 싸움이 길어져봐야 곰PD에겐 승산 없는 일이니까요.



미군의 인식표에는 '복무신조'와 '종교'도 나와 있죠.



군복을 입어 본 사람이라면, 가슴에 서늘하게 와닿던 스테인레스 인식표의 느낌을 잊지 못할 겁니다. 곰PD에겐 그 느낌이 ‘나도 이제 군인이구나’ 뭐 이런 기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군번줄’이라고도 부르고, 흔히 ‘개목걸이’(미군들도 Dog tag이라 부르더군요)라고 부르는 이 인식표의 기원은 언제부터 일까요?



인식표(Identification Tag)의 기원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군인 개개인에게 부여되는 고유번호인 군번(Service Number)입니다. 군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고대 로마군이 병사들에게 봉급을 지급하기 위해 병사 각자가 소속된 군단(軍團)·백인대(百人隊) 등의 소속을 숫자와 문자로 조합해 장부에 기록했던 것을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병사 개개인에게 고유번호가 부여되었던 것은 아니어서 현대적 의미의 군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쉐이들, 방패 하나 제대로 못들고, 들어가면 내 밑으로 다 집합해', 뭐 이랬을 리는 없겠죠?


현대적 개념의 군번은 15세기 중반, ‘100년 전쟁’을 끝내고 왕권강화를 위해 상비군 부대를 창설한 프랑스 국왕 ‘샤를 7세’ 시기로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특히 전쟁 양상이 대규모 물량을 동원한 총력전 양상을 띠고, 화기의 발달로 전사자와 탈영병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17세기 이후 군번의 개념이 확대되기 시작합니다. 평시에는 병사들의 신상관리에 사용하고, 전시에는 피아식별에서 전사상자 확인까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던 군번을 새겨 넣은 인식표는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널리 보급되죠. 미군의 경우 의외로 군번은 1918년에야 도입이 되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인 남북전쟁 이전부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다양한 인식표를 사용했고 1908년 군에서 규격을 정해 병사들에게 정식으로 지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차대전 당시의 영국군 인식표.



창군 초기부터 인식표를 도입했던 우리 군은 인식표를 ‘개인이 항시 휴대하여 전시, 사변, 기타 천재지변 등 돌발적인 사고로 인한 사상자 발생 시 신원확인 및 구조자료로써 활용할 수 있는 인적사항이 표기된 철판의 제식’(육규 168 인식표관리규정)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길이 5cm, 폭 3cm의 이 인식표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요? 몇 차례의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 사용되는 인식표에는 군종(육해공군), 군번, 성명, 혈액형이 기재되어 있습니다. 만일 인식표의 주인이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 의식을 잃는다면 적혀 있는 혈액형대로 수혈을 받을 것이고, 불행하게도 목숨을 잃고 시신을 채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인식표의 하나는 보고용으로, 하나는 시신에 남겨져 먼 후일 신원을 확인하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 인식표, 전사자가 생겼을 때 가운데를 뚝 부러뜨려 사용했습니다.

2004년 5월, 한국전 당시 국군 9사단과 인민군 2군단이 격전을 벌인 강원도 홍천에서 한 구의 유골이 발견됩니다. 국군 병사 800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이 전투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에는 신원을 알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었습니다. 다만 한국군을 뜻하는 K자와 1136804이라는 군번이 새겨진 인식표만이 반세기의 세월을 뛰어넘어 남아있었죠. 육군은 이 인식표를 토대로 병적을 확인한 결과 이 인식표의 주인이 한국전 당시 18살 학도병으로 입대했다가 행방불명된 고 김덕만 일병인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대구에 살고 있는 고 김 일병의 유족들을 찾을 수 있었죠. 형님의 기일조차 몰랐던 유족들은 육군본부에 남아 있는 전투기록을 토대로 홍천 전투가 있었던 12월 28일로 제사 날짜를 옮겼습니다.

백골로 변한 병사는 말이 없고, 인식표만이 그의 신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사진 출처=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

이처럼 인식표는 전쟁에서 숨져간 병사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유해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귀중한 자료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인식표에 대한 오해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바로 인식표의 한쪽 둥근 면에 나있는 'V'자 홈 때문에 생긴 이야기인데요, 육군규정과 야전규범에는 “전사망자(戰死亡者) 발생 시 최초 목격자가 지체 없이 사망자가 휴대하고 있는 인식표(2개)를 확인 그 중 1개는 사망자의 입을 벌려 상,하 치아에 결속 시키고 나머지 1개는 지휘계통으로 반납하여 전사망자 보고용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규정 때문에 심지어는 인식표의 홈을 웃니 중 앞니 사이에 끼우고 군화 뒷굽으로 시신의 턱을 힘차게 차서 ‘결속’ 시킨다는 얘기까지 나돌았죠.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에서는 지난 2000년부터 한국전 전사자 유해 발굴및 신원확인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2003년 육군지에 실린 ‘전시 사망자 처리 시 인식표 결속 방법에 대한 소고’라는 논문이었는데요, 이 논문에 따르면 인식표에 있는 ‘V’자 홈의 용도가 군번 타자기에 인식표를 고정해 놓는 역할을 할 뿐이라는 거죠. 그도 그럴 것이 시신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한 근거 중에 하나가 바로 시신의 치열 같은 치과 기록인데, 인식표의 홈을 억지로 시신의 치아에 박아 넣으려다 보면 치아가 훼손되기 십상이라는 거죠. 시신의 치열도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중요한 증거물로 가장 중요한 식별 자료중의 하나기 때문에 쇠붙이로 치열을 손상하게 되면 오히려 신원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논문에서는 전사자의 시신을 처리할 때 인식표 중의 하나는 목에 걸어 둔 상태로 가매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군인에게 인식표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이 될 듯 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쩌면 자신의 인식표를 여자친구에게 건네는 젊은  병사는 “나를 잊지 말아 달라” 이렇게 얘기하고 있지는 않나하고 말입니다. 비록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곁을 떠나 군문에 들어선 젊은이들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군번줄을 건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거죠. 그래서 곰PD, 이제부터는 군번줄을 철렁거리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볼 때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때요, 마눌님 “나 이뻐?”  

 

========================이상 퍼온글 ============================================

 

군무에 들어서서

처음 인식표를 받았을 때 살에 닿는 서늘한 느낌...
지금도 기억난다.


나의 인식표를 어느 여인에게 주었는데
지금 그 여인과 같이 살지는 않는다.

그 여인이 50여년간 다루던 미싱서랍에

아직도 있다.

 

어머님이 한참을 쥐고 있다가 넣어둔 그대로...

어머님의 온기와 향취를 고스란히 담고

아직도 고향집 미싱 서랍에 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인식표를 잔뜩 쌓아 놓고 이름을 찾던 장면...
처음엔 아무 감정없이 마치 카드패 다루듯 하다가
문득 그 인식표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을 느끼고는
숙연해지던 그 장면이 떠오른다.

 

눈 내리는 장면이 그려지는

추운 오늘같은 날 이렇게 추억을 되뇌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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