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왕세종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대사의 내용이 기가 막히다.
충령이 자신을 앵무새라는 스승 이수의 비유에 발끈하여 자신이 세상을
알아오겠노라고 궐 밖을 나섰다가 음해세력들에 죽을 고비를 넘긴다.
처음으로 백성들의 삶을 접한 충령은 그간 배운 것들이 스승이 말한 앵무새에
지나지 않았음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궐로 돌아온 충령은 신문고를 두드리게 되고 아비 태종의 노여움을 산다.
신하들은 충령을 보필한 장원을 매를 쳐서 죽임으로 충령의 지나친 행실을 단도리 한다.
동고동락한 몸종의 죽음에 어린 충령은 잠시 넋을 놓는다.
스승 이수는 태종에게 불려가 심문 당한다.
“언문만 깨치게 하라 하였거늘 어찌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가르쳤는가?”
“잘못 가르친 벌은 달게 받겠사옵니다.”
죽음 앞에 꼿꼿이 자신을 세우는 이수의 기품에 태종은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충령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여쭙는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만 하였을 뿐이옵니다. 충령께 소신이 배웠습니다.”
한 치라도 비굴함을 드러내어 목숨을 부지하려 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으리라.
그러나 태종은 감정의 절제를 알았고, 사리의 근본을 알았다.
태종은 노여움을 칼집에 넣고 이수에게 충령의 임금 수업을 명한다.
충령은 스승 이수와 함께 몸종 장원의 묘를 찾는다.
장원의 아버지의 해수병 약재를 놓고 충령은 미안함에 오열한다.
'기다리는 아버지가 더 그리운 것일까? 멀리 떠나온 아들의 그리움이 더 큰 것일까?'
죽을 고비를 함께 넘기고 나서 장원에게 묻던 충령의 질문을 장원은 알아들었다.
충령이 아버지의 정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장원이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런 장원을 보낸 충령의 슬픔을 스승 이수가 곁에서 안았다.
충령은 동료의 죽음을 진심으로 미안했고 돌이킬 수 없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기가 죽인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죽은 것이라며 두려움에 떨던 충령은 스승에게 말한다.
“다 내가 잘못한 일이야.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궁궐을 뛰쳐나갔던 것도,
신문고를 두드렸던 이유가 백성의 실태를 알리고자 함도 아니었어.
그것은 단지 아버지에게 관심을 받고자 함 이었어.”
'그것은 단지 아버지에게 관심을 받고자 함이었어.'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찌릿~ 해보기도 첨이었다.
나도 이곳에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관심 받고 싶을 뿐이다.
관심으로 나는 변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죽을만큼 고통이 수반되는 날이었다.
5개중 3만 이루었다.
내 자신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주위의 변화되는 상황에 나만 안일한 자세이고 싶지 않다.
난 자신을 제일 잘 안다.
이기적인 DNA로 꽉 차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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