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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찍어놓은 세상

향기로운 담밑 긴 정원 2

 

 

 

 

빈 것을 자꾸 채우려는 욕심이 오히려 마음을 빈약하게 만들곤 합니다.
관악기 아름다운 소리의 비밀은 비움에 있다걸 알면서도 말입니다.
자주 접하는 콘서트 리허설 무렵에 튜닝하는 과정에서 내게 보여주듯
마른 선들을 정리하는 첼로스트의 손가락에서 비어있는 첼로를 보는데 말이죠.
무릇 풍족한 마음이란,

썰물이 빠진 뒤 갯뻘 위에 남아있는 척척한 문양들 같은 건데 말입니다.
그 고여 있는 물의 힘으로 쭉쭉 항해할 수 있는 건데 말입니다.
우리에게 때로 텅 빈 시간이 필요합니다.
드나듦의 흔적을 꼼꼼히 새길 만한 여백이 필요합니다.


    ( 고궁의 아르드리 나무 사진)

 

 

새벽이 되면 먼 들이 가까워집니다.
겹겹 기운 마음들을 별빛 총총 들어선 어둠에 내려놓습니다.
낮의 적막을 뚫고 밤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쑥쑥 자랍니다.
집집마다 포근히 깃든 고유한 추억들은 새어나오지 못하고
하늘 끝까지 붕붕 떠오릅니다.

짙푸른 어스름이 깔린 자리, 하얗게 속살을 드러낸
길목마다 노오란 불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어제는 까마득히 등 뒤로 사라지고
내일은 환하게 들꽃냄새 진동합니다.

새벽은 오직 깨어있는 자의 몫입니다.
눈 뜬 자들은 새벽을 맞이하기 위해선
밤을 버려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희뿌연 빛,
꼬끝이 싸해지는 바람,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에 고요히 얼굴을 맞대는
일이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적막과 분주함,
어둠과 빛,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넉넉하게 자리를 넓혀가는 꿈의 공간,
밤의 여신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 찰나,
새벽~!


     ( 새벽 골목길 사진 )


길 끝에 서면 모든 것이 아름답습니다.
가뭇없이 사라진 발자국들로 하여금 문득,
나 어디에 있는가, 서글퍼질 때면
끝간데 없는 길의 끝을 바라봅니다.
지난것들,
지나칠 것들,
잊혀진 사람들,
모두 이 길 속에 녹아듭니다.
먼 곳에서부터 온 치기어린 꿈과
오랜 그리움 안고 오늘도 길을 향합니다.


      ( 구름이 잔뜩 덮힌 산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