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사회적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한국사회를 살펴보면 무엇을 알 수 있을까? 우선 "우린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에서 시작해 보자. 최근 들어 정계와 재계의 지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다. 애플의 아이폰과 닌텐도의 게임기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윗분들'의 훈계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기 시작한 '유행어'기도 하다.
당사자가 의도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기술과 사회의 관점에서 '우린 이런 거 왜 못만드냐'는 물음은 상당히 전복적인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사회는 왜 이 꼴이냐'고 묻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는 그가 몸담은 조직과 그 조직을 포함하고 국가 모두를 의미한다.
못 만드는 이유?
결론부터 말해 보자. 흔히 '질문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 상황에 정확히 부합하는 말이다. '이런 거 왜 못 만드느냐'고 묻는 것은 질문자가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만들자'고 말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모두 지도자들이다. 조직에서 가장 강한 권력과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사람들 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거 왜 못 만드냐'고 묻는 지도자가 많을수록 그걸 만들어 낼 가능성은 낮아진다.
두 번째는 이런 질문을 태연히 던질 수 있게 하는 위계적 사회구조다. 위계 사회에서 '왜 못 만드냐'는 말은 질문이 아니라, 질타이고 추궁이며 명령이다. 여기서 자신의 책임은 빠져있다. (자기는 방법을 모르지만) '어떻게든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위계적인 조직일수록 소통은 막혀있기 마련이다. 이런 경직된 소통구조 속에서 창의력이 꽃 피기를 바라는 것은 '우린 왜 못 만드냐'는 질문만큼이나 어리석다. 그런 질문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조직이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을만큼 위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게 두 번째 답이다.
봉건적 위계사회의 비극
애플이 동기가 된, '이런 거 왜 못 만드냐'는 질문은 사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그러나 일본에서 이 물음은 반성과 각성에 가까웠다. 왜 애플같은 회사가 일본에서는 태어날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혁신과 첨단기술의 대명사가 된 나라에서 말이다. 그 쟁쟁했던 소니, 도코모, 토요타의 일본에서 말이다.
흥미롭게도,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답변마저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나왔다. 2008년 2월 25일자 <뉴스위크>가 '애플이 일제가 아닌 이유'를 설득력 있게 분석한 것이다. 크리스찬 캐릴 기자는 "창의력의 빈곤은 일본의 독특한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수직통합된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위계적 경제환경에서는 융통성과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위계적 조직에서는 반대가 불가능하다. 반대가 불가능한 곳에서 창의적 사고도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위계적 기업문화가 재계를 넘어 정치, 교육, 문화의 모든 영역까지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사회 전체가 단일 기업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일본 주식회사(Japan Inc.)'로 전락한 것이다.
기업 내부에서 반대가 불가능하면 밖에서 반대를 해 주어야 한다. 국민이, 언론이, 대학이, 정부가 말이다. 그러나 이들마저 기업조직의 일부가 되고 나면 창의력이 발휘될 여지는 사라지고 만다. '회장님' 좋아하는 언론이나, '기업이 선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는 사회와 기업 모두에 해가 될 뿐이다.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국가 CEO'를 자임하거나, 기업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애플과 인문학의 관계
현재 한국 교육계는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는 '통폐합'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컨대 음악과 미술 수업을 '통폐합'하고 (이런 '창의적 발상'이 가능한 나라에서 아이폰이 안 나온 게 놀라울 뿐이다), 초등학교에서 쉬는 시간을 5분으로 '통폐합'하고, 대학 전공을 "사회 변화의 요구에 따라" 절반 수준으로 '통폐합' 하겠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면, '노는 시간'을 없애고, '돈 안 되는 전공,' 즉 인문학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정부의 적극적인 승인과 지지가 있다. 정부는 이런 '교육개혁'을 주도하면서 '창의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야심찬 "한국형 스티브 잡스 양성계획"도 나왔다. "탈락시스템에 따라 3단계의 검증 과정을 거쳐" 10명 안팎의 "소프트웨어 마에스트로"를 선정한다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선발할지 모르지만, 대단한 '스펙'을 갖춘 실력자들이 몰려들 게 틀림 없다(조롱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지원해도 탈락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어쩌나. 스티브 잡스는 한국 정부가 그렇게 없애고 싶어하는 두 골칫거리의 산물이니 말이다. 바로 '인문학'과 '노는 시간'이다.
지난 1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아이패드'를 선보인 날이었다. 그는 애플 사의 정체성을 설명하면서, 대형 스크린으로 표지판 사진을 보여주었다.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내판이었지만, '길 이름'이 독특했다. 서로 엇갈린 두 개의 표지판에는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Technology)'이라고 쓰여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의미를 설명했다.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로입니다. 애플은 언제나 이 둘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해 왔지요."
'미국식 교육'의 중심은 인문학
'미국식 교육'을 잘 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식 교육을 '돈 되는 실용교육'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역과 규모를 막론하고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의 공통점이 있다. 하나 같이 뛰어난 인문학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첨단 기술연구로 알려진 매사추세츠 공대(MIT)는 훌륭한 철학, 언어학, 문학, 예술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의무적으로 인문학과 사회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
미국 대학의 전통은 크게 두 축이 있다. 연구중심 종합대학과 학부 중심의 인문대학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종합 연구대학에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라 불리는 학부 중심 인문대학에서 더욱 큰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
오바마 대통령도 콜럼비아 대학으로 옮기기 전 '옥시덴탈 칼리지'라는 학부 인문대학을 다녔다. 비록 한 학기만에 그만 두기는 했으나, 스티브 잡스가 다녔던 '리드 칼리지'도 학부 중심 인문대학이었다. 그는 청강으로 들었던 서예수업을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생애 최고의 선택'으로는 '학교를 때려 치운 것'를 꼽았지만 말이다(게다가 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 말을 했다).
미국 대학이 '리버럴 아츠'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뭘까? 크게 세 가지다. 커뮤니케이션(소통) 능력, 비판적이고 윤리적 사고, 분야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교양.
미국에서 인문교육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지식이나 실용적 기술'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다시 말해, 한국 정부가 싫어하는 것들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인 셈이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온 교육'을 성공 비결로 내세운 것이다.
인문학, 왜 중요한가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실용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왜 '돈 안 되는' 교육이 대접을 받는 것일까? 간단하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저 돈만 되는 게 아니라, 더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문학 교육은 '고전 교육'이다. 고전(classic)이란 세월이 흘러도 의미를 잃지 않는 인류의 성과물을 말한다. 실무용 지식과 기술은 하루가 멀다고 변하지만,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의 가치는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문학적 기초가 있는 사람은 실무 지식도 쉽게 배운다. 쉽게 배울 뿐 아니라, 제대로 배운다. 제대로 배울 뿐 아니라, 그 지식을 올바로 쓸 줄 안다. 하지만 그 반대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교육을 투자에 비유한다고 하자. 당신이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디에 투자하겠는가?
지금 한국의 기업과 정부와 대학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실무적 지식이나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소통능력, 비판능력, 윤리의식, 보편적 교양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주장하는 '대안'은 죽어가는 인문학을 뿌리까지 없애고 그 자리에 단편적인 실용지식과 기술을 채워 넣는 것이다.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인문학에 존경심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미래 경쟁력의 토대인 창의력까지 죽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적 비판 능력은 '남과는 다른 생각,' 즉 창의력의 토대가 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윤리의식은 배려와 협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준다. 한국에서 애플이 나올 수 없는 세 번째 이유다.
경쟁교육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유치원생이 영어공부 하느라 놀 시간이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무한 경쟁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학생이 성적을 비관해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단다. 자본주의는 경쟁체제이고, 경쟁을 권장해야 '선진 일류국가'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런 '부작용'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초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국가 지도자가 '선진 인류국가'와 '선진국 문턱'을 말할 때마다 내 입에서는 이런 무엄한 소리가 흘러 나온다.
"젠장, 그 문턱은 길기도 하다…."
유치원 시절에 듣던 '선진국 문턱' 이야기를 중년이 다 되어서까지 듣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장담컨대, 내 생전에 한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관적인 이유가 있다. 한국 정부가 말하는 '선진국'은 다가서면 사라지는 신기루다. 당나귀 머리 앞에 달아놓은 당근. 주인을 태운 당나귀는 당근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지만, 죽는 날까지 당근을 입에 대지 못한다. 그 당근은 새 당나귀의 머리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내 비관론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경쟁교육'은 이미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경쟁 교육은 나누고 배려하는 사람을 배출하지 못한다. 한국식 경쟁 교육에서 앞서가는 '비결'은 빼앗고 감추는 것이다.
그러나 리눅스, 위키피디아, 플리커, 앱스토어, 트위터, 페이스북의 성공에서 보듯, 뉴미디어 시대에서는 '나눔'과 '배려'가 새로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와이어드>는 이처럼 협력에 기반한 미래의 공동체 경제를 '신사회주의(New Socialism)'라 부른다. 내가 나누면 남도 나눌 것이고, 공동체는 번영하게 된다.
모든 것을 떠나서, 서로 밟고 밟히는 곳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이것이 한국인들의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고,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이유다. 아이폰을 왜 못 만드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이런 식의 경쟁체제를 유지하다간 '한국형 잡스'나 '선진 일류국가'보다 사회 붕괴가 먼저 찾아올 것 같으니 말이다.
차장 : 이거 안 되면 어떡하나, 니가 책임지나?
사원 : ......
부장 : 성공한 사례가 있어? 성공했다는 자료 가져와봐
사원 : ......
상무 : 이거 사장님이 아시는 거야?
안 될지도 모르고 성공한 사례가 아직 없기에 새롭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희가 말하기 전엔,
아이패드,
이처럼 좋은 기사를 읽을 때마다 속이 상한다.
인문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균형을 이루고 서로 경쟁하면서
교육이 너무 경쟁위주로 흐르고 인문학보다는 돈이 되는 취업하기 쉬운 학문만으로 채워진다면
특히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과 영어중심의 교육 시급히 청산해야만 한다.
인성과 인격 창의력을 함양할 학생시절에 너무 영어에만 올인하는 교육으론 좋은 인재를 양육할 수 없고,
자기 적성에 맞게 공부하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우리 국민들은 머리가 좋은 민족이다.
그 좋은 머리로 매일 입시와 취직에 필요한 암기로 시간을 허송하니 창의력이 죽는 것이다.
꼭 대학에 안가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그리고 이것은 전 사회적 모든 부분에 다 깔려있다.
교육에서, 경쟁을 통한 승자만을 남기는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미혼모들, 원치않는 경험을 통해 미혼모가 된 이들은 그 또한 씁쓸하지만
노인들..
사업을 하는 사람들...
한번의 실패로 낙오자가 되기 쉽상인 백척간두의 인생을 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은
정년도 길고, 임금도 만족스러우며 무엇보다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값진 경험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낙오처리 하는 우리 사회는...
새로운 것이 나올수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가족들의 생계가 언제 풍전등화가 되고
무슨 인생이 이렇게 치열한가.
스티븐 잡스는 그 자체로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이기도 하지만,
내가 말하는건 실패한 인생들에게 막 퍼주면서 다 먹여살리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정말 망하는 길이라는걸 잘 안다.
사람들의 인식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바뀔수있는 교육을 하고,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살수있는 사회분위기를 좀 만들어주고,
한번 실패는 병가지 상사라는 말이 정말 내게 적용이 될수 있어
일례로, 한국형 스티븐 잡스 만들기 프로젝트처럼
내가 보기에 이 기사는 단순히 아이패드에 국한된 글은 아니다.
왜? 글쓴이는 굳이 이 비유를 했을까?
그리고 선진국은 또 뭘까??
아이패드 해야 선진국 되는 것도 아니고..
글쓴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패드가 아니라 개인의 창의와 자율을 제약하는
그리고 그것을 죄악시 하는 정권에 대한 애두른 비판이다.
혹자는 또 직설적으로 말 안하고 애둘러 비꼬았다
이거 좌파 혹은 종북세력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거다...
(이 삐리리쉐이들은 삐떡하면 좌파니 종북이래...
천안함때 개거품 물고 북진하지 안하고 자빠졌다가...)
왜냐?
그 한 마디면 가만히 앉아서 대충은 그 진정성에 대한 탄핵은 되니까..
하지만 ... 듣고 안 듣고는 상관 없다.
어차피 정권은 바뀔거고
조금 더 기다릴 뿐
조바심 낼 생각은 없다.
난 이 정권이 인공어항 청계천을 결정적인 계기로
기득 언론의 이념장사와 미래가 안 보이는 헛된 국민의 물욕이 만들어낸
역사의 교훈으로 보고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내 솔직한 맘이다.
민주의 작동원리에 따라 발전해 가는 공동체가 잠시 정체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그것도 교훈으로 삼을 과거라면 더 나은 미래가 올 수도 있다.
청계천은 청계천일 뿐이다.
나와 같이 무지 몽매한 국민 여러분
더 이상의 환상은 가지지 마시기 바란다.
청계천을 보면 미래가 보이는데...!
진정 그 미래를 원하시는지...?
난 이 글을 민주당 혹은 참여신당이 꼭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난 그들의 지지자도 아니지만 그나마 대안으로 보긴한다.
그들이 과연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어떤 비전도 없이 한나라당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한나라당틱한 것일 뿐 선택의 대상은 절대 될 수 없다.
(욕나올라는거 참는다......)
개부랄같은 민주당과 참여당 니들 때문에 국민은 더 피곤한 것이다.
충고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해라."
아~ 뜨벌 술 한잔하고 글을 쓰자니 끝은 또 이상하구만.....!
또 날짜선을 넘겨 버렸네...내일은 더 힘든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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