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은 달 가고 날 가면 살아지는 디, 죽은 사람은 생전도 못 오고..”
대체 남도 섬 할머니들 말씀은 모두가 시다!
“산 사람은 달 가고 날 가면 살아지는 디.”
이 짧은 한 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가?
시이면서 그대로 절절한 노래다.
자은도 백산리 마을 어느 집, 우연히 담장 너머를 들여다봤더니
마루에 고양이 떼가 우글거린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열 마리는 족히 넘을 듯 한데
할머니 곁에 있는 걸 보니 도둑고양이가 아니다.
아니 무슨 까닭에 저처럼 많은 고양이를 키우시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당으로 들어선다.
“한 쌍이 왔는데 열 마리도 넘게 됐어요. 우글우글 앉아 있으면 얼척 없어요.”
할머니는 이 집의 주인이 아니다.
주인이 목포에 나간 사이 잠깐 고양이들 밥도 주고 돌봐주러 온 것이다.
이 집 주인의 막내아들이 서울 사는데
작년 1월1일 그 춥던 날 고양이 두 마리가 문밖에 찾아와 울기에 문을 열어줬다.
“그래서 인정 많은 새끼가 키웠던 갑소.”
그런데 아들은 고양이를 더이상 감당 못하게 되자
고향의 어머니 집으로 보냈고 그것들이 새끼에 새끼를 쳐서
지금은 근 20여 마리로 불었다.
고양이들은 좀 채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않는다.
목포까지 나가 사료를 사다 먹이는 일도 보통 고역이 아니다.
주인은 산목숨들이라 어쩌지 못하고 거두고 있지만
어디로 다들 나가줘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단다.
왜 아니겠는가.
스물 한살 암태도 처녀가 시집와 팔금도에서 팔십 노인이 됐다.
“인자는 자식도 필요 없어요. 삼시로 이우제서 이라고 살아야제.”
이웃이 자식보다 낫다는 말씀.
초상이 났는지 마을 앞산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내려온다.
선산에 장례를 마치고 오는 것인 듯하다.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시아버지 제사 지내러
목포에 나갔다가 그만 쓰러져 돌아가셨다.
목포에서 화장을 한 뒤 자식들이 유해를 모시고 들어와 선산에 묻었다.
“갑자기 그라고 죽었다우. 겁나게 불쌍하요.
시골 살면 고생이제. 농사짓고 살면.”
조문객들은 대부분 생전의 할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교인들이다.
“이단이라고 하듸냐. 교도 몇단 몇단 있는 갑디다.
난 일단 이단 삼단도 안믿어요. 아자씨는 멀 믿으요.”
“야뇨 저도 아무 단도 안 믿습니다.”
조문객들은 이단이라고 지목된 교회의 신자들인 모양이다.
고인의 남편은 살아계신 모양인데 그것이 또 걱정이다.
“워매 워매 어치고 사까. 불쌍해라.”
할머니는 고인의 남편을 걱정하다
이내 죽은 이가 더 불쌍하단 생각이 드시는 모양이다.
“산 사람은 달 가고 날 가면 살아지는 디, 죽은 사람은 생전도 못 오고...”
할머니의 한탄이 구성진 가락이다.
“산 사람은 살다보면 다 삽디다.
산사람은 좋은 일도 보고 궃은 일도 보고.
한번 죽어 빌면 생전도 못오고.”
좋은 일뿐이랴! 궂은 일도 살아있음의 증거니 무엇을 한탄하랴.
죽은 자만이 불쌍하고 또 불쌍타!
할머니는 혼자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그래서 영감이 돌아가신 뒤에는 한동안 무덤엘 가지 못했었다.
“영감 죽어도 부끄럽디다. 영감 죽고 돌아댕긴다고 흉볼까봐 뮛등에도 못갔어라우.”
한번 가면 못돌아오는 세상. 살아남은 것이 그토록 죄스럽기만 한 세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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