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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바라보는 세상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1987년 1월 전두환 정권의 장기집권 음모가 노골화 되어가자 민중의 저항의지는 갈수록 높아져갔다.

그러던 중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수사도중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이 사실을 축소 은폐하기에

급급했던 5공정부는 당시 경찰관 2명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고 이 사건을 종결지으려 했다.

하지만 수감된 해당 경찰관들은 자신들만 처벌되는 것에 앙심을 품고 사건 전말을 당시 같은 구치소에 수감 중이었던 이부영 전민련 상임의원에게 전달하게 됐고, 이씨는 이 사실을 쪽지에 적어 밖으로 내보내게 된다.

이 쪽지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거쳐,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고 김승훈 신부가 집전한 광주민주화항쟁 7주년 시국미사를 통해 박종철 군 사망사건에 대한 정부의 축소. 은폐공작내용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시국미사를 통한 사제단의 폭로에 국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했고, 결국 이는 한국 민주주의 초석을 다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 시국미사를 준비하기 위해 '수단'으로 갈아입는 신부들  >

(맨 좌측 흰옷을 입고 계시는 신부님은  교정사목하시는 일명 큰형님 신부님이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07년 3월9일. 서울 명동성당 들머리에서는 또 하나의 '시국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시국미사'였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의 사순 전례의식에 따라 보라색 영대를 두른 신부들이 삼삼오오 성당 앞으로 모여 들었고 가톨릭 농민회에서 나온 농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번 집회는 확성기 소리와 각종 구호들이 가득한 여느 집회와는 다르게 가톨릭 의식으로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어둠에 싸인 세상을 천주여 비추소서."

입당성가는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였다. 이번 미사 집전을 맡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김시영 신부는 "잘못된 정치와 정책으로 우리 농촌과 국민들의 근심이 깊어지고 있다"면서 한미자유무역협정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신부는 우선 현재 추진 중인 한미 FTA가 타결되면 이로 인해 농촌의 피해가 가장 먼저 발생될 것이고, 이는 식량주권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가 한미자유무역협정의 필요성으로 언급하고 있는 서비스 부문의 개방을 통한 고용창출이라든지 그로 인한 소득의 양극화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동반성장론'은 어불성설이라며, 독일과 영국의 경우 이 방법은 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만약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신자유주의식 고용구조가 정착되어 노동시장의 유연화, 비정규직이 대량발생 발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한미자유무역 협정 저지 구호를 외치는 신부들 >
이번 집회는 작년 겨울에 열린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를 위한 시국미사의 연장선으로 치러졌으며,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박종철 군 시국미사를 본격적인 시발점으로 89년 임진각에서의 통일염원미사, 2002년 소파개정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한 추모미사, 2005년 평택 대추리에서 열린 미군기지 확장저지를 위한 평화미사 등 우리사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제들의 사회참여 문제를 질문하자 정의구현사제단 및 가톨릭 농민회 수원교구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북원 신부(안양중앙성당 주임신부·43)는 "사제는 인간을 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불의와 싸우고 정의를 소중히 지켜가는 것이 하느님의 백성인 인간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가톨릭의 '시국미사'가 우리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왔냐는 질문에는 "우리사회의 문제들을 민중에게 알리고, 사회 속에서 핍박받고 가난한 우리 이웃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온 것 같다"고 말했다.

가톨릭의 구약성경 중 '아모스서' 5장 24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 이를 소중히 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제들의 신앙적 외침이 폭력과 힘의 논리, 거짓됨이 난무하는 우리사회에 정의로운 움직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