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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소망하는 세상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낫같이 들리도 없어라
아바님도 어버이어신 마라난 어마님같이 괴시리(사랑함이) 없어라…’

사모곡(思母曲)!
그 내용의 의미보다는 오로지 시험 때문에 기계적으로 달달 암송했던

이 고려적 가요가 나도 모르게 자꾸 입안에서 맴돈다.
호미를 아버지로, 낫을 어머니로 비유하여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보다 더 크고 지극함을 읊은 노래가 아니던가!


그리곤 어느새,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이란

한 구절만 자꾸 되뇌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아는 아버지는 늘 늙으신 얼굴에 주름 가득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도 한때 청년시절의 객기가 있었고, 젊은 날의 방황이 있었으며

나와 똑 같은 20대를, 아니 더 험한 날들을 겪어 오셨다는 사실을

아버지의 친구분들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아! 아버지도 나와 같은 젊은 시절이 있으셨구나.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과 첫사랑에 가슴 앓았던 적도,

까닭 모를 외로움과 장래에 대한 번민에 잠 못 이룬 날들도 있으셨겠구나...!

.................................

이 때 만큼 아버지가 가까이 느껴진 적은 없었다.

 

“아버지, 이제야 아버지를 좀 알 것 같습니다.”

...............................

“이 눔아, 넌 아직 애비 맘 모른다. 이 담에 자식 키워보면 알까...?”


 

별로 말이 없고 속 감정의 표현이 거의 없으셨던 모습은,

그 젊은 날의 감당키 어려운 크고도 무거웠던 삶의 무게 때문에

모든 것이 다 소진되어버린 결과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내 지갑속의 빛바랜 한 장의 사진!
바로 50대의 아버지가 정장을 하시고 찍은 것이다.


꽉 다문 입술에,

얼굴에 번져가는 우수의 그림자!


나는 그 사진 속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세월을 거슬러

그분의 20대와 40대를 본다.

그리고 .........

내가 20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20대를 이해할 수 있었고

40대가 되어서야 아버지의 40대를 이해할 수 있었듯이...

또 흐르는 세월 속에서 50대가 되어야 아버지의 50대를,

70이 되어야 70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게다.

말없이 지긋이 바라만 보시며 그저 한 두 마디 밖에 없으셨지만

나는 그 속에 녹아 있는, 호미 같이 무디고 우툴두툴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본다.

그 사랑을 느낀다.

내 자식들에게도 언젠가는, “넌 아직 이 아비 맘을 모른다.

이담에 자식 키워보면 알까!”라고 말하며 혀를 차겠지만...

‘호미도 날히언 마라난 낫같이 들리도 없어라
아버지도....

아버지도...’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