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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가 바라보는 세상

명동성당, 하느님 세상에...

명동성당 사목위원회가 용산참사 범국민 대표들의 철야농성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시설관리를 요청한 모양입니다.

이 때문에 농성은 일단 명동성당앞과 시설보호를 위해 출동한 경찰앞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명동성당이 성당임을 망각했다(링크)'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명동성당을 존중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시국농성이냐(링크)'고 성토하기도 합니다.

명동성당의 시설보호요청, 개인적으론 명동성당 사목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라고 믿고 싶지만- 설사

사목위원회의 자체적인 결정이라고 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습니다.

... 사실, 지난 2000년 한국통신 노조의 농성이후, 명동성당은 지속적으로 농성자제를 요청하며

시국농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명동성당은 지난 2002년 보건의료노조가 파업했을 당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백남용 주임신부 명의로 보낸 공문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을 다른 이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 이기주의적인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성당 방문객들의 통행 불편, 시위 소음으로 인한 미사 방해, 농성천막 설치와 숙식으로 인한 업무 차질 등을

이유로 바깥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한 바가 있습니다.

▲ 87년 6월 15일, 명동성당



성당은 왜 농성 장소가 되었는가

지난 1995년,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을 잡기 위해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경찰병력을 투입했다가, 여론의 거센 후폭풍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군사정권에서도 침탈하지 않았던 곳을, 문민정부라고 말하는 사람이 어떻게-라는 것이 당시 정서였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 건물에 대한 감정은 그런 것입니다.

약하고 박해받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피해가는 곳. 사실 우리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무슬림은 폭격을 피해 무슬림 사원으로 모이고,

2차 세계대전 당시 갈 곳 없는 유태인들은 교회를 찾았습니다.

동남아의 불교 신자들은 마지막 피난처로 절을 선택합니다.

왜 그런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아주 옛날부터,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군사정권에서 종교 시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종교적 의미와는 다르겠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마지막 기댈 장소로 생각하고 있는 곳,

그곳이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을 건드린다는 것은, 그 정치적 권력의 포악함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기에 종교 시설은 자신의 종교를 믿는 자에게만 머물 것을 허락하는 곳이 아닙니다.

루가 복음의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처럼, 사람의 이웃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사람들은 성당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합니다.

왜 순복음 교회안에서 농성하지는 않냐구요?

그 교회에서는 그 사람들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시국농성을 하며, 그러다 몇몇 사람들이 못난 짓을 좀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들조차도 결국 '교회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 "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하고 반문하셨다.
27: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네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대답에
28: 예수께서는 "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살 수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 놓고 갔다.
31: 마침 한 사제가 바로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2: 또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길을 다건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35: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돈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잘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드리겠고.'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36: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교사가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 루가 복음 10장 25절-37절, 해설판 공동번역성서, 국제가톨릭성서공회편찬, 일과놀이, 1977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지만, 시국 농성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명동성당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신부님의 말대로, 명동성당에서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해야할 일도 많고, 관리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시국농성까지 자꾸 겹치면 정말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최소한, 이제까지 머물고 있는 수배자들을 강제로 쫓지는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성당에 계신 사제와 신자분들이 명동성당에 농성하러 들어오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때문에 신앙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피해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구축과

사회 안전망의 구축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모든 농성자들을 성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은 올바른 문제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교회는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위한 편의 시설이 아닙니다.

또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없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약한 사람들을 위한 역할을 억지로 떠맡아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들을 내치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교회를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성당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가톨릭이라면, 그렇게 하십시오.

순복음 교회와 소망 교회와 광림 교회와 하나 다를 바 없는 것이 명동성당이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십시오.

그것은 누가 가톨릭 교회에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것이며, 교회에 버림받은 사람들은 알아서 다른 길을 찾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명동성당은 더 이상 많은 이들의 이웃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앞서 인용한 글의 질문을 다시 던져볼까요?

자, 그러면 이 세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여전히, 카톨릭 교회가 소외받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12일 저녁 진행된 용산참사 촛불추모제에서는 방패를 든 경찰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날 명동성당에서 시설보호 요청을 하면서 경찰이 출동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앞서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이하 용산대책위)'는 5시경 경찰의 방해 없이 농성 천막을 성당 입구에 설치했다.

이처럼 경찰이 대책위의 농성과 추모제를 방해하지 않은 이유는, 성당 측의 요청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강서 신부는 “성당 측과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농성의 목적을 전해들은 성당은 농성을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대책위는 명동성당 측에 14일까지 농성을 진행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