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면 승인으로부터 최종 생산출고까지 9개월‘
’테스트카 없음'
이번 다이하츠 부정 실험 사태에 대해 일본 자동차 미디어의 심층취재 기사를 읽다가 충격 받은 문구입니다.
보통 도면이 승인되면 그 도면으로 '(가칭)테스트카'를 만듭니다. 이걸로 각종 도로, 기후환경, 나라별 유종 등 온갖 상황에서 테스트를 이어가죠.
또 하나 만드는 것이 있는데 '(가칭)충돌실험용 모델'입니다.
국가별 기준에 맞춰 여러 방향과 속도로 충돌실험을 실시하고 기준을 통과해야 하죠. 전복테스트 등도 하고요.
모든 게 끝나면 생산관리에 들어가 공장에 라인을 깔고 양산준비를 시작합니다.
차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양산준비 과정 또한 만만찮아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생산 및 최종 출고가 가능해지죠.
보통 도면 승인 이후 최종 양산 출고까지 아무리 못해도 2년은 걸릴 겁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이 과정에만 4~5년씩 걸리고 그랬어요.
그런데 요즘 다이하츠는 그걸 9개월 만에 끝내 왔다는 거죠.
아시다시피 일본 경차들은 쪼그라드는 자국 시장에서 극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정말 단돈 1엔 단위로 아끼려 하는 극한 마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차를 타보면 바로 느껴집니다.
통 플라스틱, 극 단순화한 계기반, 얇고 딱딱한 시트, 없다시피한 방음단열재, 밝은 색상과 패턴으로 싸구려 우울함 감추기...
소비자가 느낄 수 있는 최종 만듦새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사내에서 이뤄지는 제작과정은 얼마나 타이트하겠습니까.
그 결과, 테스트카는 보통 1대 밖에 만들지 않고, 그마저도 시뮬레이터로 돌려 아예 만들지 않는 경우도 있답니다.
실제 주행테스트 따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도면 승인 이후 최종 공장 양산 출고까지 보통 1년, 빠르면 9개월 안에 끝내버린답니다.
시간은 곧 비용이니까요.
물론 안전규정은 해마다 엄격해지고 있어서, 출동테스트용 모델의 제작대수는 갈 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거기서 늘어나는 비용을 다른데서 줄이기 위해 각종 환경에서의 주행용 테스트카는 아예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참,
충돌테스트 마저도 매우 타이트한 일정으로 진행하다 보니 에어백 관련 프로세서를 제때 개발하지 못해 타이머로 에어백을 터트려가며 충돌실험한 적도 있다네요. ㅎㄷㄷㄷ
좌측 충돌테스트 결과를 우측에도 실험 없이 그대로 적용하여 통과시킨 적도 있고요.
아무튼 이렇게까지 극한으로 개발기간과 비용을 줄이다 보니, 64개 차종에 174건이나 되는 부정행위가 쌓여왔던 것입니다.
아무리 다이하츠 모델의 대부분이 내수시장 용이라고 해도, 동남아 등 신흥국에 판매하는 경우도 많은데 어떻게 주행테스트 차량을 단 1대 혹은 아예 만들지 않고 최종 양산까지 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다양한 환경에서의 온갖 상황을, 그리고 주행감각을, 모두 가상으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간 것인지...
아무쪼록 여러모로 놀라운 뉴스라 살포시 옮겨와 봤습니다.
뭔가가 성장할 때는 여분과 마진, 구멍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거기서 움직일 수 있는 폭과 새로운 가능성이 싹트는 것이고요.
그러나…
기울기가 내리막쪽에 있는, 쪼그라드는 시장/환경/국가에서는 모든 것으로 부터 압박이 들어옵니다.
그 타이트함과 우울함은 아주 구석구석 깊은 곳까지 디테일하게 퍼지기 때문에, 접하는 모든 곳에서 사람을 조여오지요. 그렇게 무기력함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하나의 가정이나 회사도 아니고, 거대한 국가단위로 그렇게 됐을 때의 매우 나쁜 감각은 겪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저렇게만 안 따라갔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을 십 수년 전부터 갖고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그 생각이 강해집니다. 우리도 앞날 사정이 딱히 낫지 않아서…
이상.
#다이하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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